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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여관의 역사

일본 여관의 시작,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 여관에는 일본 고래의 뛰어난 문화나 기술, 예술, 습관 등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인이 소중히 여기며 계승해 온 생활 양식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일본 여관에 숙박하는 것, 그것은「일본」그 자체를 몸소 느끼는 것입니다.
일본 여관의 원점은 나라(奈良)시대(710~784년)의「후세야(布施屋)」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후세야」는 무료 숙박소로, 여행자를 묵게 하는 시설의 시작이라고 일컬어집니다. 교통기관이나 교통망이 발달되지 않았던 당시, 노숙을 하면서 계속하는 여행은 목숨을 거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길가에서 굶어죽는 사람도 많아, 그를 보다 못한 승려들의 손에 의해 여행자 구제를 목적으로 한「후세야」가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나중에 고승으로서 널리 알려진 교키(行基)는, 교통이 험한 곳에 길이나 다리 등을 만드는 동시에 도읍 부근 지역에 9개의「후세야」를 열었습니다. 나라시대는 율령제도가 확립되어 중앙집권적인 국가 체제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던 무렵으로, 이 시기에 도읍으로 통하는 도로나 역이 설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헤이안(平安) 시대(794~1191년)에는, 황족이나 귀족이 신앙지에 참배하는 여행이 활발해져, 장원(귀족이나 절과 신사, 지방 호족의 사유지)과 사원이 숙박에 이용되었습니다. 사원내에 설치된 숙박시설은 신자나 참배자들에게도 개방되었으며, 나중에「슈쿠보(宿坊)」라고 불리다가 오늘날 널리 일반인들도 이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로서 계승되어 왔습니다.
가마쿠라(鎌倉) 시대(1192~1333년)에 들어서면, 싸구려 여인숙에 해당하는「기친야도 (木賃宿)」가 등장합니다. 식사는 제공하지 않고, 그 대신 자취를 위한 장작값만을 받았다고 해서「기친야도(木賃宿)」라 불렸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에도()시대 (1603~1867년)에 접어들면서, 가도가 정비되고 화폐 경제가 발달해 상인 등의 왕래가 활발해짐에 따라 식사를 제공하는「하타고(旅籠)」가 생겨났고, 당분간 「기친야도」 와의 공존 시기를 거쳐, 에도시대 후반에는「하타고」가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그 한편으로 막부는 지방 영주의 대두를 억제하면서 그들에게 충성을 맹세하도록 하기 위해, 영주들을 일정 기간 에도에 와서 머물게 하는 산킨코타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교대로 에도와 영주들의 영지 사이를 왕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때에 많은 시종들을 거느린 영주 일행의 숙박시설이 되었던 것이, 도중의 역참이나 숙박지에 위치해 있던「혼진(本陣)」이나「와키혼진(脇本陣)」이었습니다.
주로「혼진」이나「와키혼진」의 역할을 담당한 것은 지방의 명가 또는 절이나 신사, 나아가 지역의 부자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하타고」는 일반적인 여관, 「혼진」이나「와키혼진」은 고급 여관이라는 느낌이 듭니다만, 그 격차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관의 현관 앞에서 /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여관에서의 연회 풍경 / 1920년대 후반~193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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